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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일상

2013년 돌아보기

정말 내 인생에서 올해처럼 다양한 일이 많았던 적도 없었다. 올해가 1년이 아니라 2년쯤은 된 것처럼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바쁨 가운데서도 하나씩 돌이키면 역시나 감사하고 감사할 일들로 가득차 있다. 나의 올해를 크게 세가지로 정리해봤다.


1. 새로운 시작 - MBA

(관련글: 2013/12/25 - [나의 하루/MBA 준비기] - Final Decision)

2013년 3월 설마 했던 일이 발생했다. 회사 MBA 스폰서십에 선발된 것이다. MBA에 가는 건 회사에 입사할 때부터 생각은 해왔지만, 회사 스폰서십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올해 초 겨울, 겁없이 MBA 선발공고에 자기소개서를 주변 선배들 몰래 제출을 하고, 1차, 2차, 3차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가슴의 먹먹함은 LBS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보다 더 컸다. 그때의 감동은 단순히 내가 어려운 것을 성취했다는 것보다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MBA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 회사 전 계열사의 최고 인재들. 기업인이기 전에 정말 뜨겁고 진국들인 형 누나들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러 MBA의 재학생, 졸업생들을 만났다. 30대 중반에 대기업의 임원을 하는 누나. 스탠포드 학사, 하버드 JD/MBA Dual 과정을 받는 친구 등등. 정말 세상에 똑똑하고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14년 여름이면 런던에서 2년동안 나도 그들이 거쳤던 비슷한 삶을 시작한다. 그 2년의 항해가 인생의 바다에서 어떤 항로로 방향을 틀어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MBA에 몸을 싣는다고 내 인생이 자동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명문고, 명문대를 졸업한 내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결국 내 속에 알멩이가 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런던이라는 곳, MBA라는 새로운 환경이 나를 알멩이가 더 꽉찬 사람으로 영글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2. 이별 후 깨달은 것 - 외할아버지의 죽음

(관련글: 2013/08/19 - [나의 하루/일상] - 할아버지와 이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달이 넘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나의 옹졸함을 깨닫게 했고, 상투적인 말이지만 정말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줬다. 나는 외할아버지를 몇년간 돌보는 부모님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가까운 극장에 가서 영화도 쉽게 못 보고, 본인들이 먹고 싶은 외식도 못하고. 가까운 국내 여행도 못 갔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기에 할아버지를 속으로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 방 건너편 방에서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렀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한없는 죄스러움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정도 예상했던 할아버지의 운명에도 정신이 나갈 정도로 슬퍼하는 엄마를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조금 더 따뜻하지 못했고, 너무 단순하게 부모님에게 효도하기만 원했던 나의 모습이 철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몇년을 저렇게 항상 외할아버지를 위해 희생했던 엄마도 결국 죽음이라는 최후의 이별 앞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과연 지금 얼마나 부모님께 잘 해드리고 있는가. 우리는 소중했던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게 중요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거의 100%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올 여름 내가 겪었던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은 최소한 가족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말자는 예습을 시켜준 셈이다.

3. 감사, 감사, 감사 - 친구, 선후배, 가족

올해 이 모든 다양한 일들에 항상 가족, 친구들, 선후배가 힘이 되었다는게 정말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1월 초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를 돌봐주신 부모님, 병문안와서 웃음주고 간 친구들과 회사 선배, 기도해준 목사님과 교회 동역자들. MBA 준비 과정에서 중심을 잃지 않게 해준 인간미 넘치는 학원 선생님들 - 외국 선생들 포함, 공부 외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가깝게 지낸 형 누나들. 에세이 방향 설정을 못해서 좌절할 때, 새벽1시까지 스카이프로 도움 준 변모군, 홋궁. 그리고 회사에서 나때문에 업무의 쓰나미에 피해를 본 선배님들. 특히 더욱이 이제 다시 일좀 해볼까 했는데, T/F로 선발되서 도움이 못되서 너무 미안하고 미안한데. 나 민망하지 않게 쿨하게 대해주시는 모 선배님. 너무 바쁜데도 추천서 써준 두명의 인생, 회사 선배들. 8월 할아버지 장례 치를 때 조의온 교회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이 모든 과정에서 정말 한번도 나에게 힘든 내색 없이 나를 뒷바라지해준 부모님. 정말 가끔 내가 아직 서른살이라는게 부끄러울정도로 도움을 받는다.

정말 올 한해 내가 성공할 때나 좌절할 때나, 놀라울 정도로 주변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해줬다. 내가 받은 도움과 사랑을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빚들을 지고 말았다. 솔직히 정말 고맙고 고마운데 어디서부터 고마움을 표현해야할지 몰라서 아무말도 못하겠다.

2014년 그리고 내 삶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또 내가 아직은 모르지만 더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도 이런 사랑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