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요즘 내 생활의 요약이 아닐까. 회사에서 날을 새가며 일을 해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의 양들이 내 한계를 시험하고, 자꾸 나를 부족하게 스스로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중간중간 사업부장 보고를 무사히 끝내고 내 자신이 잘났음에 기분이 으쓱할 때도 있지만, 다시 그분을 만났을 때 무참히 깨지고 나면 그 자신감은 하찮은 교만이었다고 이름표를 바꿔버리기에 급급하다. 아무튼 지난 몇주간 너무 바빴다.
그 바쁜 기간 중 지난 수요일은 내 서른 살 생일이었다. 8월 22일 새벽 1시 넘어 퇴근을 하면서 선배 과장이 보내준 카톡 축하 메시지로 내 생일인줄 그때야 알게 됐다. 내 하루하루가 전쟁의 연속인데 생일을 챙길 여유도 없었나보다. 어찌됐든 그날은 그래도 여러 사람들이 내 생일을 기억해주었고, 지금 돌이키면 참 고마운 일인데 내가 내 한몸 바쁘다는 핑계로 충분히 그 축하에 적극적으로 인사를 못 한건 참 미안할 따름이다. 아침에 어머니가 해주신 생일상과 축하케이크, 선배 과장 부부의 작은 선물, 내 자리에 갑자기 찾아와 노래를 불러준 동기들의 깜짝 서프라이즈, 내 책상에 놓인 케이크들을 보며 축하해준 회사 여러분들, 스마트폰으로 끊이없이 오는 인생 최대의 카톡 180여개 축하 메시지와 페이스북 담벼락 글들까지... 축하해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게도 그날 너무 바쁜 나머지 스마트폰 알람을 다 꺼버려서 새벽에 퇴근하고 그때부터 답장을 하게 됐다. 아무튼... 그렇게 바빴고 생일을 충분히 기념하지 못했다.
엊그제 그렇게 한달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1차 마감이 되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부족한 내용들 때문에 찜찜한 마음이 남았지만 모두 잊기로 했다.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위키드를 봤고, 가을에 입을 샴브레이 셔츠를 맞췄고, 회사일로 얻은 목 통증 덕분에 태어나서 제일 비싼 베개를 샀다. 돈은 좀 썼지만, 지난 한달동안 희생한 내 자신에 대한 선물이라고 하면 될까. 그리고 압구정에서 오랜 친구 B군이 내 생일이라고 소고기를 사줬고, 여자들이만 쓸것 같은 화장품 브랜드에서 스크럽팩을 선물로 줬다. 너무 된장스러운 하루인가?
일요일 오늘은 부모님과 오전에 수영을 다녀오고, 삼촌이 차에 기름을 가득채워줬고, 교회에서는 친구들이 생일 축하 케이크 선물과 간단한 축하 song을 불러줬다. 저녁엔 동네 맛집에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개콘을 보면서 간만에 블로깅 중이다.
바쁜간운데 짧은 순간순간 즐거움이었고,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뿌듯했다. 힘든 가운데서도 즐거운 일상을 선물해주시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감정을 남겨주신데 감사한다.
내일 다시 또 어려운 숙제들이 남은 한주가 시작되지만, 힘내자.